
칠레 정부가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현지 콘서트 개최를 최종 불허하면서, 분노한 현지 팬들이 수도 산티아고 도심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BTS를 국립경기장으로"…보라색 물결로 뒤덮인 산티아고
지난 5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도심은 수백 명의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ARMY)'가 주도한 거센 항의 시위로 마비됐다. 이번 시위는 칠레 당국이 오는 10월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BTS의 3회 차 대규모 콘서트를 전격 취소하면서 촉발됐다.
이날 BTS를 상징하는 보라색 의상을 입고 집결한 팬들은 "BTS를 국립경기장으로"라는 현수막을 들고 대통령궁인 모네다 궁전 인근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BTS의 히트곡을 부르며 평화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에 참여한 다니엘라 트루히요(22) 씨는 "삶을 지탱하게 해준 아티스트를 만날 유일한 기회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박탈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 "600톤 무대에 잔디 훼손 우려" vs 팬들 "대안 없는 탁상행정"
칠레 국립스포츠연구소(IND)는 콘서트 불허 결정이 철저한 기술적 검토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IND 측은 "관객과 호흡하기 위해 설치되는 360도 개방형 특설 무대는 약 600톤에 달한다"며 "이러한 하중이 가해질 경우 천연잔디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향후 국가대표 축구 경기 등 주요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현지 팬클럽 관계자 히셀 뮤뇨스 씨는 "산티아고 국립경기장 외에는 수만 명의 관객을 안전하게 수용할 대체 시설이 전무하다"며 정부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당국이 대체 장소를 물색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단순 공연 취소 넘어 정치권 공방으로 확산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문화 행사 취소를 넘어 칠레 정국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위에 나선 일부 팬들은 "정부가 직면한 각종 정치적, 사회적 실책을 덮기 위해 무리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현지 정치권도 가세했다. 야권 인사들은 정부의 대형 문화 행사 유치 능력을 비판하며, 관련 부처의 책임 규명과 투명한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칠레 정부는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으며 안전 기준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다"고 반박했지만,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논란은 쉽게 진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