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대중예술계의 살아있는 전설, 가수 윤복희가 방송을 통해 화려한 이력 이면에 숨겨진 가슴 아픈 개인사를 가감 없이 고백했다.
지난 2일 방송된 MBN 토크쇼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 게스트로 출연한 윤복희는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걸어온 길을 회상했다. 이날 특유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현장 분위기를 주도하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대목은 동료 가수 조영남과의 유쾌한 에피소드다. 윤복희는 조영남이 신인 시절 자신을 '누님'이라 부르며 공항까지 따라다녔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조영남이 나보다 한 살 많았다. 그 사실이 밝혀진 뒤 호칭이 '윤 씨'로 바뀌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조영남의 히트곡 부재를 언급하며 "나는 히트곡이 수십 곡인데 그 친구는 대표곡이 없다. 나중에 그를 보내줄 때 부를 노래를 미리 찾아놔야겠다"는 뼈 있는 농담으로 각별한 우정을 과시했다.
국내 최초 뮤지컬 가문의 탄생과 해외 진출의 화려한 기록
윤복희는 대한민국에 미니스커트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19살 무렵 태국 국왕 초청 공연 당시를 떠올린 그는 "한국에 살지 않아 미니스커트가 파격적인 스타일인 줄 몰랐다"고 밝혔다. 니트 투피스를 올려 입다 보니 자연스럽게 짧은 원피스 형태가 됐고, 이것이 한국 패션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설명이다.
그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은 가문 내력이다. 1942년 국내 최초로 뮤지컬 극단을 창단한 아버지와 국악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무대와 친숙했다. 윤복희는 "UN군 공연을 제작하시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자연스럽게 무대에 섰고, 관객의 박수가 좋아 계속 무대에 오르게 됐다"고 데뷔 비화를 전했다. 이후 '코리안 키튼즈'를 결성해 해외에 진출, 루이 암스트롱과 비틀스 등 세계적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높였다.
전남편 유주용 향한 그리움과 가슴속에 묻은 중절 수술의 아픔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인간 윤복희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전남편 유주용에 대해 "내 이상형이었고 남자로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며, 이혼 후에도 현재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실을 공개했다. 당일 아침까지 약혼 사실을 몰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결혼식을 놓칠 뻔했던 황당한 일화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것은 자녀를 갖지 못한 이유에 대한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윤복희는 과거 해외 활동 계약 당시 '출산 금지' 조항이 존재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서 탓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피임에 무지했던 탓에 원치 않는 임신을 네 번이나 해 중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종교를 가진 후 가장 많이 회개한 부분이 바로 그 수술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성공을 함께 나누지 못한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깊은 슬픔으로 남아 있었다.
'여러분'으로 전하는 위로와 거장의 끝나지 않은 울림
방송 후반부에는 국민 가요로 불리는 히트곡 '여러분'에 얽힌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임재범, 이선희 등 수많은 후배가 리메이크한 이 곡에 대해 윤복희는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현장에서 신예 조째즈가 1절을 부르자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이어받아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뽐냈다. 그는 "'여러분'을 부르면 나 스스로가 먼저 위로를 받는다"며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을 역설했다.
윤복희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가로서 대중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있다. 고난으로 점철된 삶의 궤적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고백은 완벽해 보이는 스타의 이면에 자리한 인간적 고뇌를 여실히 보여줬다.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을 성공시키고 '피터팬'을 제작하는 등 공연 문화 발전에 헌신해 온 그의 발자취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깊은 귀감이 되고 있다. 솔직함이 무기가 되고 연륜이 감동으로 다가온 윤복희의 이야기는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